배낭 하나 메고 떠난 상해여행

2022. 12. 3. 09:12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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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하나 메고 떠난 상해여행

 

평소 나를 오빠처럼 여기는 아내친구의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가슴 아픈 비보를 듣고 떠날까,말까 망설이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게 되였습니다.

이른 아침을 먹고 리무진에 올라 인천을 향해 달렸습니다.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습니다.무척 한산 했습니다.

학생들은 방학전이고 년말이라 직장인,사업 하시는 분들도 바쁜가 봅니다.

11명의 일행을 만나 서로 인사도 주고 받고 중국동방항공에 올랐습니다.

인천에서 상해까지의 거리는 대략 1,093km로 항공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요즘 신종플루도 주춤했는지 승무원들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더군요.물론 승객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상해 푸동공항에 도착하니 몇 년전에 와서 보던 청사의 모습은 무척 다르게 변했습니다.

2010년 세계엑스포를 준비하는 공항으로 1,2,3청사를 증축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청사가 완공되면 세계제일의 커다란 공항으로 태어난 답니다.

공항에서 저희는 버스로 이동 했지만,자기부상열차가 운행 중 이였습니다.

우리의 KTX의 속도는 평균 320km인데 이곳의 자기부상열차의 속도는 431km로 세계에서 제일 빠른 열차라고 합니다.

상해는 포동과 포서로 나누어 지는데 황포강을 기준으로 포동은 개발된 신도시로 서울의 강남 같은 곳 입니다.

상해는 중국의 넓은 땅의 일부로 서울의 10.5배이고 인구는 약 3천만명이라고 하는데 2400만명이 현지사람 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룽바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한국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1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옛날집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상해의 구거리에 있는 우리의 임시정부청사 였습니다.그래도 제가 처음 찾아 갔을 때 보다 많이 정비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관리원의 안내로 안으로 들어가 비디오 상영을 본뒤 시설 내부를 돌아 보았습니다.

초라한 곳이지만 민족을 사랑하는 숨결이 느껴지는 곳 이였습니다.그냥 구경거리가 아니라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배우고 가는 민족의 역사현장 이였습니다.

짧은시간에 돌아 보았지만 마음속에 자꾸 뒤돌아 보아지는 아쉬운 장소 였습니다.

 

 

유럽인들이 사는 신천지라는 번화가에 가보았습니다.생각보다 조용한데 유럽풍의 건물들이 중국 속 유럽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럽인들도 가끔 보였습니다.

여기도 여전히 중국인들의 상술이 존재 하는 곳 이였습니다.

 

 

상해의 가장 혼잡한 거리 남경로에 갔습니다.퇴근 무렵 저녁시간으로 말을 할수 없을 정도로 혼잡 했습니다.

그래도 혼잡 속에 질서가 있고 매력이 있는 곳 이였습니다.

잡상인과 경찰이 숨박꼭질하는 모습도 보이고,발코니의 작은음악회도 있고 젊은이들의 놀이문화도 있고,길양쪽으로는 제법 비싸게 보이는 가계들이 즐비했습니다.

이곳의 노키아핸드폰 대리점에는 4,000만원짜리 핸드폰도 있다고 합니다.저는 들어가지 못하여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남경로를 구경하고 저녁식사를 한뒤 그 유명한 상해서커스를 보기 위해 공연장으로 갔습니다.

마시청이라는 공연장인데 이곳이 상해에서 서커스를 제일 잘 하는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공연의 수준은 대단 했습니다.큰 공연장인데도 자리가 매진될 정도로 관중이 많았습니다.

 

 

상해의 첫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가 룸조인을 한분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같은 종씨로 항렬도 같은 먼 친척 같은 분 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혼잡한 상해거리를 빠져 나와 소주를 향해 갔습니다.

북경 올림픽 덕분에 고속도로와 휴게소는 무척 잘 되여 있었습니다. 노면도 최상,휴게소의 화장실도 깨끗하고,상점도 정찰가격으로 정리되어 있고…..

소주에 다가오니 온통 집들의 모습은 검은지붕에 하얀벽 이였습니다.중앙의 관리로 급제를 많이 한 고장으로 지붕은 먹,벽은 종이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사찰인 한산사에 도착하여 사찰의 모습을 보기로 했습니다.

한산사의 역사는 1,500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사찰에는 중국의 커다란 향불,높은탑이 인상적 이였습니다.저는 불교에 별로 관심이 없어 그냥 주변경관만 감상 했습니다.

 

 

 

비단장사로 거부가 된 서태시가 황제의 공원을 본떠 만든 유원이라는 공원에 갔습니다.

원래는 무척 커다란 공원 이였는데 많이 축소되어 일부만 남아 있는곳을 개방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정원으로 아름다운 모습 이였습니다.

점심을 한뒤 중국의 발맛사지를 받고 항주로 이동 했습니다.

가는 길가에는 경항대운하의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이곳에서 북경까지 운하가 이어 진다고 합니다.옛날 남쪽의 물건들을 북경까지 이동하는데 무척이나 편리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중국의 송나라 때의 수도인 항주는 서동파라는 걸죽한 인물을 배출하고 중국의 4대미인의 하나인 서시가 있던 곳 입니다.

 

 

 

예전에 상해를 방문할 때 구경을 하지 못한 송성가무쇼를 저녁 식사후 관람하기로 하고 그곳에 갔습니다.

세계 3대가무쇼로 동양에서는 최고라고 합니다.

가무장안에는 옛 송나라 도시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거리의 풍경이며,사람들의 복장 까지 중국 송나라 시대의 모습 이였습니다.공연에 앞서 거리 구경을 했습니다.중국의 옛풍물들이 무척이나 재미 있었습니다.

가무쇼가 진행되는 공연장은 자리가 없어 서서 관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해에 무척 많은 관광객이 가무쇼를 보러 온다고 합니다.사실 저도 송성가무쇼를 볼려고 상해에 왔으니까요.휘황 찬란한 무대,의상,공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정신이 없었답니다.

중국의 여러 가무쇼를 저도 보았지만 상당한 수준의 가무쇼 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항주의 서호에 갔습니다.호수 주변에는 물안개가 피어 있었습니다.

에전에도 가보았지만 서태후가 욕심을 낼만한 호수였습니다.서호의 모양을 본따서 북경에 이화원이라는 인공호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수심은 약 2m정도 이지만 진흙뻘의 깊이가 무척 깊어 물에 빠지게 되면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합니다.이곳에는 중국의 유명한 담수진주를 양식 한다고 합니다.

유람선에 올라 호수의 뱃놀이를 즐겼습니다.물안개로 사진은 담가가 어려웠습니다.

차창으로 육화탑을 보며 다시 상해로 돌아 왔습니다.

차가 무척이나 많아 길이 정체 되였습니다.황포강 밑으로 터널이 있어 이곳을 통과하여 포동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황포강의 터널은 총 7개로 현재 5개가 통행이 되어지고 있고 2개는 건설 중 이라고 합니다.다리도 7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포동에 들어서니 동방명주탑이 보이고 높은 빌딩의 숲이 도시에 가득 합니다.

일본에서 지은 110층짜리 빌딩이 현재 가장 높은 빌딩인데 중국인의 자존심 때문에 그옆에 136층짜리 빌딩이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동방명주탑에 입장하는데 1초에 13m를 이동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236m높이의 탑 중앙부 까지 올라 갔습니다.

탑에 올라보니 상해의 모습이 모두 보였습니다.아름다운 노을도 같이.....

대단한 도시였습니다.

 

 

 

동방명주에서 내려와 황포강 유람선에 올랐습니다.상해의 하일라이트 상해야경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유람선비는 20불로 승객들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야경의 모습은 정말 장관 이였습니다.

유람선의 흔들림과 촬영기술의 부족으로 예쁜 야경의 모습은 별로 담지 못했습니다.

눈과 가슴에는 많이 담아 보았지요.

황포강의 유람을 끝으로 상해여행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와 상해의 마지막 잠을 청하고 아침에 공항으로 이동하여 고국에 돌아 왔습니다.

 

너무 갑자기 마련한 짧은 상해여행 이였지만 중국의 급속히 발전된 모습은 볼수 있었습니다.

물가가 너무 비싸고 그리고 혼잡한 상해.

조그만 한 도시에서 사는 저는 상해 그곳은 그저 멍멍할 따름 이였습니다.

노란 은행잎 가로수와 정겨운 시냇물이 흐르는 이곳 전주. 

나의 고향이 최고로 살기 좋은곳 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먼곳에 다녀도 항상 그리운 곳은 고향 입니다.

돌아 갈수 있는 곳이 있다는 행복함으로 여행을 마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