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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발상지 전주

전주산 2023. 4. 4.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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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발상지 전주

 

가끔은 울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우리마음에 평화을 찾을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론 웃음의 미학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작은 가슴의 마음을 내 보이는것 입니다.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걸 맞게 행동 하며  늘 본분을 지키면 복이 저절로 찾아 온다고 합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슬픈날엔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그리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소망을 갖고 살며 소망은 늘가슴속에서 나와 머리속에서 그려져야 하고 항상 나을 낮추면 누군가 나를 늘 주시하고 있음이 느껴지면 절로 겸손과 기쁨이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선대가 살았던 자만동 마을과 선비길을 걸으며 조선왕조 발상지의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토록 북적이던 한옥마을이 아침의 고요속에 깨어나고 있고 참새의 지져귀는 소리로 행복한 아침이군요. 풀풀 먼지나던 길도 물청소가 되어 있어 상쾌한 햇볕이 너무 반갑습니다.
일단 오목대 밑의 쉼터에서 시작 합니다.
오목대에 나무계단에 올라오니 깨끗한 햇볕에 반짝이는 기와지붕 모습이 너무나 정겨운 우리의 한옥마을 답게 시원스레 눈에 들어 옵니다.
여기가 카메라의 앵글을 고정시켜 전주의 고즈넉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명소 랍니다.
모두 한참을 구경 했습니다. 이제 서서히 참나무 숲의 밑을 지나 오목대에 오릅니다. 오동나무를 상징한다는 오목대에 오동나무는 한그루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때에도 오동나무는 없었습니다. 아마 놀 오(敖)자를 일제시대에 왜곡하여 기록한것 같습니다.
이 곳은 태조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대첩에서 승리를 거두고 귀경길에 선조들이 살았던 자만동을 들려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고 일가친척들을 모아 잔치를 열었던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의 철길로 잘려나간 곳에 조그만 다리를 건너 이목대로 갑니다. 이목대에도 배나무는 옛날에도 없었습니다. 과수농사를 짖는분들은 절대 산기슭에 배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합니다.
배나무는 바람의 영향이 많습니다. 그리고 배를 수확할때 경사가 지면 위험할수도 있는 까닦입니다. 그래서 평지인 가까운 이서배가 이고장에서 유명 합니다. 전주복숭아도 같은 이치 입니다. 지금은 효천지구로 개발되고 있는 땅이 옛날 왕실에 전주복숭아를 진상했던 유명한 용산리 복숭아밭인데 명맥을 이제 볼 수 없게 될것 같습니다.
이목대는 목조 이안사와 호랑이의 설화가 남아 있습니다. 무서운 호랑이도 호령할만큼 대담함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설화 입니다. 내용은 생략 합니다.
이제 금표를 찾으러 두리번거립니다 좁은골목이고 무허가집들이 있던 곳이라 찾기가 쉽지 않네요. 요즘 이상하게 벽화마을로 재탄생되어 조금은 어수선 합니다.
아래쪽은 전주천의 범람의 위험과 발산과 승암산의 줄기가 북풍을 막아주는 한마디로 풍수명당의 동네 입니다. 그래서 이씨조선의 발상지가 되었나 봅니다. 드디어 금표를 찾았군요. 땅에 뭍히거나 버려질뻔한 것을 다행히 세멘트 바닦공사로 그래도 남아 있는것이 다행 입니다.
이곳이 신성한곳이라 채석,벌목을 금지한다는 표시 입니다.
치악산의 구룡사 입구의 황장목 채취를 금지한다는 금표도 현재 남아 있습니다.
선비의 길로 들어 섭니다. 향교에서는 원광대교수님으로 유명서예가이신 여태명님의 글씨 연출이 있었습니다. 보기드문 장면을 횡재 했네요.
향교의 이야기와 중앙초등의 전신인 조그만한 한옥집을 방문하고 일정을 마쳤습니다.
한옥마을 친구집에서 맛갈스러운 전통차 한잔씩을 구걸할려고 했는데 친구가 아프다네요.
너무 소중한 반나절의 일정을 소화 했습니다.
언제 하늘색의 두루마기와 둘레큰 갓을 쓰고 선자채를 들고 한옥마을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오늘 너무 유익하고 즐거웠습니다. 같이 하신분들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