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4. 07:37ㆍ카테고리 없음
전주부성의 흔적을 찾아서

행복이 무엇 별거입니까?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 거닐고 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것도 행복이지요.
내가 쓴 한 줄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인것을요. 관심 있는 일에 서로 동행하며 함께 즐기고 작은 것에서는 행복을 놓지않고 서로가 스스로 크게 만들어 가는것도 바로 행복이랍니다.
전주의 부성길을 걷기 위해 몇분이 모였습니다.
패기와 열정으로 전주 문화지킹이를 자부하는 송병화선생님을 따라 옛지도의 흔적을 따라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18세기 전주부의 전주지도는 지난 2011년 7월 전주부성의 역사를 담은 번역서‘전주부성 축성록(全州府城 築城錄)’이 발간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전주와 전주부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1734년(영조 10) 전라감사 조현명이 주도한 전주부성 개축의 전모를 기록해놓은 필사본 자료입니다.
그동안 강원도 춘천 풍양조씨 문중에 소장돼 있던 이 책은 당초‘한예집수’(漢隸潗數)라는 해서 예서체를 모아 놓은 것으로 소개됐었습니다.
풍양조씨가의 문서를 재조사하면서 전주부성 축성에 관한 문헌으로 밝혀졌습니다.
1733년부터 이듬해까지 전주성 축성과 관련해 중앙에 올린 문서, 각 군현에 내린 문서, 축성 절차와 물자 등이 총괄적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일제에 의해 사라진 전주성을 역사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 됩니다.
또한 영조 때 개축되기 이전의 전주 옛 성에 대해서도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옛 성의 규모와 형태, 나아가 전주성의 변천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축성에 관한 기록이 임진왜란 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축성을 위한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부터 당시의 공역이 어떤 형태로 진행됐으며, 인력 동원은 어떻게 했고, 그 처우는 어떠했는지, 나아가 백성들의 형편을 어떻게 배려하면서 공역을 해나갔는지 등을 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장인, 일꾼 등의 품삯이라든지 급료 등이 사항별로 상세히 기록돼 있어 일꾼들의 하루 급여 및 기능별 차이 수당 등에 대해 살펴야 할것아고. 죄인에게 일을 시키고 죄를 면해 주고, 기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굶주림을 면하게 한 이야기들도 소중 합니다.
전주시는 2016년 8억여원을 들여 옛 전주부성이 있던 중앙동과 풍남동을 대상으로 '역사 도심 기본계획 및 지구단위계획 수립 용역'을 한다고 밝혔답니다.
이에 앞서 전주시는 천년 전주의 전통 이미지와 낙후된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조선시대 전주부성(全州府城) 길의 재생에도 나섰습니다. 충경로와 팔달로를 중심으로 5.4㎞의 전주부성 터 길 및 주변 가로가 해당됩니다.
풍남문 주변 정리와 북문·동문·서문 등 재현 등도 해당됩니다. 앞으로 전주 한옥마을 인근의 옛 전주부성(全州府城) 일대가 역사·문화 보존지구로 관리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전주부성은 성곽도시였습니다. 전주부성의 남문과 풍남문은 오늘날 전주를 상징합니다.
또한 전주부성 안에는 경기전이 있고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곳입니다. 조선시대 전주부성은 일본이 양곡 수송을 위해 1911년 전군가도를 개설하면서 성곽 동쪽 부분이 남문(지금의 풍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면서 부성의 자취가 사라졌습니다.
한편 조선시대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견훤이 쌓았다는 고토성이 전주부의 북쪽 오리에 있다고 나옵니다. 전북도청에서 북쪽으로 2km지점은 지금의 전주고등학교 뒤 편, 전주시 중노송동 일대입니다.
이 일대는 오래전부터 견훤의 궁궐터라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곳입니다.
견훤은 전주에서 완벽한 왕도를 꿈꿨습니다. 892년 견훤은 무진주에서 나라를 일으켰고 그 후 900년 견훤은 삼국통일의 야망을 품고 전주로 천도, 백제를 부활시켰습니다. 그는 완벽한 방어체계를 자연적으로 겸비한 승암산을 왕궁지로 택했고 그리고 산 정상에 그의 꿈을 이룰 터전인 '전주성'을 세웠습니다.
전주를 찾는 많은 방문객이 한옥마을에서 끝나지 않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전주부성으로 자연스러운 유입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전주부성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 문화자원을 조사․발굴, 정리하여야 필요도 있습니다.
전주는 남문인 풍남문을 제외하고 일제에 의해 성곽이 철거되기 전까지는 성곽의 도시로서 삼남(三南)에서 가장 큰 성곽을 가진 도시였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까지 전주, 진주, 대구에 큰 성이 있었지만 대구부성은 전주부성의 2/3에 불과했으며, 성곽이 철거된 이후 동문, 서문, 북문 등 지명만 남은 채 성곽 도시로서 전주의 모습이 상실되었다고 합니다.
성곽은 없어졌지만 전라감영, 객사, 경기전 등 역사와 전통의 도시로서 전주 유적들은 모두 전주부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주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의 동서남북에는 각각 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현재의 동문사거리, 서문은 구 다가동파출소 앞, 북문은 현재 오거리, 그리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풍남문이 있습니다.
천년고도 전주를 지키던 전주부성 내에는 풍패지관(전주객사), 전라 감영지, 경기전 등 역사유적지가 있으며, 객사등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전주부성은 1734년 영조10년에 전라감사 조현명이 축성 했다고 전해집니다.
전주부성축성록을 참고로 이제 걸어보기 시작합니다. 시작은 전통문화회관에서 시작하여 옛길따라걷기 안내판을 시작으로 전주옥 순교지를 확인하고 전주부성의 완동문(판동문)까지 왔습니다. 여기는 동문시장 안에 있는 헌책방가 사거리 입니다. 옛날에는 이곳으로 진안 소양등지에서 인삼과 한약재등 그리고 산나물 약초들이 반입 되었던 곳 입니다. 경기전 벽을 끼고 곧장 걷습니다. 지금의 전주중앙초등학교에서 오른쪽 경기전 정문인 하마비까지 갑니다.
하마비에서 잠시 쉬며 경기전의 모습과 하마비의 유래의 설명을 듣습니다. 비를 업고 있는 두마리의 사자의 암수를 구별합니다. 저와의 의견이 상반 됩니다. 그건 나름대로의 생각 일수 있고 다시 풍남문을 향하여 팔달로를 넘어 갑니다. 풍남문에 왔군요. 풍남문 앞쪽으로 들어 갑니다. 루각은 오를수 없지만 아름다운 팔짝지붕의 형태를 볼수 있습니다.
양식은 홍예문으로 한양의 숭례문을 축소한 형태 입니다. 1층 안쪽 8개기둥이 그대로 2층까지 올려진 특수한 기법의 건축물 입니다.
원래 고려 1389년 공양왕때 최유경이 창건했는데 조선 영조 10년(1734년)에는 조현명이 성곽과 성문을 짓고 명견루라고 했었는데 영조 44년(1768년)에 정유재란의 대화재로 불타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고 했습니다.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루 입니다. 성밖쪽의 문은 철재로 튼튼히 하여 놓았고 성으로 들어오는 천정에는 봉황의 새문양이 화려 합니다. 조선왕조의 신성한 도읍에 들어옴을 상징 합니다.
남부시장 통을 걸어가니 옛날 집신이 보입니다. 옛선비들이 한양에 가기위해 집신 한꾸러미를 하인등에 지우고 가던 영화의 모습도 생각 나더군요. 이부근이 매곡교 부근이랍니다. 담배대 장수들 그리고 종이, 옷등을 팔던곳 이랍니다.
지금의 차이나 거리 안쪽 구 다가동파출소자리에 패서문(상서문)이라는 곳 입니다.
이곳은 전동성당을 짖기위해 중국의 건축기술자들이 성당을 짓고 중국에 들어가지 않고 남은 중국인들이 모여 살던 곳 입니다. 일명 비단장수 왕서방 골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옛날 저의 어린시절에는 남문시장에 한복집과 이불집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유명한 중국요리집도 많았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군요. 동서관통로를 건너 콩나물국밥집으로 유명한 삼백집을 지나 옛날 담배창고가 있던곳까지가서 우측으로 들어 갑니다. 영화의 거리를 지나가면 옛날 역전오거리가 나옵니다. 조그만하게 만들어 놓은 소공원 모퉁이에 공북문(증거문)의 흔젓의 표지석이 보입니다. 누가 주차금지 간판을 받쳐 놓았군요, 이제 국민은행 건너편으로 곧장가면 버드나무가 보입니다. 옛날 버드나무 막걸리집으로 유명한데 지금은 다른업종으로 장사를 하는군요.
여기는 문인들이 많아 책 제본을 많이 하기도 하고 한지도 많이 팔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인들은 술과 벗하여 토론을 자주 합니다, 자기의 이상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인지 모릅니다. 어릴적 항상 시끄러운 어른들 여럿이 곤드레 만드레하며 술집을 나서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회전하기가 힘들어 교통사고가 많았던곳을 전주시에서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여 길을 확장하고 조그만한 소공원을 만들어 놓았네요. 아마 전통문화센터가 만들어져 길을 확장 했나 봅니다.
여기까지 전주부성을 다 돌아 보았습니다. 완주 했습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걸었는데 다 돌고보니 이제야 다리가 아픈걸 느끼겠더군요.
그래도 좋습니다. 집신을 신고 통갓을 쓰고 하인을 데리고 도포를 휘날리며 걷는 시간의 역공간으로 간 나를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에 행복한 하루 였습니다. 같이해주신 모든분 감사 드립니다.



































